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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 과학기술분야의 기초를 쌓은 사람들
구분 동향자료 저자
발간기관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발간일 2016-11-21
원문링크 http://www.nktech.net/inform/nkt_briefing/nkt_briefing_v.jsp?record_no=11
해방 전 대학을 비롯한 전문학교, 각종시험장, 조사기관 등 과학 분야의 시설의 대부분이 남한에 모여 있었다. 따라서 조선인 과학기술자 역시 대부분 남한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치혼란과 전쟁, 특히 국대안 파동으로 상당수의 과학기술자들이 월북하였다. 그리고 월북한 과학자들은 북한 과학기술 분야의 기초를 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과학 연구의 선구자 월북 과학자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물리학자 도상록이다. 도상록은 동경제국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 “수소와 결합한 헬륨이온의 양자역학적 사용”이란 논문을 완성했다. 1940년경에는 만주의 신경공업대학교 교수로도 근무한적이 있던 도상록은 해방 후에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장의 중책을 맡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대안 사건이 발생하였고, 도상록은 국대안 반대운동의 선두에 섰다가 대학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도상록은 북한으로 건너가 김일성종합대학 창립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게되었다. 그는 1946년 9워 15일 개교한 종합대학의 물리?수학부장을 맡아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90년 타게 하였다. 국대안 반대운동으로 대학에서 쫓겨나 종합대학의 설립에 참가했던 또 다른 인물은 수학자 김지정이었다. 김지정은 동경제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해방 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귀국 후에는 연희전문대학, 경성사범학교, 경성대학 교수로 지내다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는 종합대학 초기의 수학 강의안과 교과서를 제작하였으며, 과학원이 창설될 때는 원사에 임명되었다. 김지정은 북한의 수학계의 기초를 쌓은 사람이었고,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도상록과 김지정 외에도 화학분야의 김용호와 농학분야의 김량하 역시 북한 과학계의 기초를 쌓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연구의 선구자 북한의 과학기술계의 기초를 쌓은 기술자는 정준택, 최성세 강명창 등을 들 수 있다. 정준택은 해방 전까지 만년광산의 선광기사로 근무했다가 해방직후 광산장이 되었다. 그는 만년광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광산 실태와 전망, 기술 개선안을 정리한 자료집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 자료집으로 공학박사를 수여하였으며, 북조선의 행정 10국 국장을 거쳐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되었고, 후에는 부수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준택은 1973년 심장마비로 62세의 생을 마쳤고, 국가에서는 전시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공화국 영웅” 호칭을 수여하였다. 최성세는 동경제대 공학부 전기과를 졸업한 많지 않은 전기관계 전문가였다. 그 역시 국대안으로 대학에서 쫓겨나 남한 과학자연맹 서기로 활동하다 북한으로 건너갔다. 1946년에는 대안전기공장에서 자력으로 전동기 제조에 성공하고, 한국전쟁시에는 평양의 전기망 및 상하수도 복구를 맡는 등 전기 부문의 최고의 자리에서 근무했다. 그는 평양 북창의 화력발전소 확장공사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5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강영창은 그의 일생이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북한에서 주목받던 인물이다. 그는 금속관리국 국장, 중공업상, 과학원 원장 등 최고의 자리를 역임하다 그 역시 54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과학사, 기술사 연구의 선구자 북한에서 과학사, 기술사 연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이용태와 김승원이다. 이용태는 경성제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이 설립될 무렵 월북해 한국전쟁때는 소련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1951년 “전자기 이론 발전에 있어서 러시아 물리학자들의 업적”을 발표했다. 이것은 레닌그라드 대학의 학사논문(대학원 석사 혹은 박사에 해당함)으로 북한 최초의 과학사 관련 연구논문이었다. 귀국한 그는 이과교육에 종사해 다양한 참고서와 해설기사를 비롯하여 [우리 선조의 자랑?과학과 기술 이야기 (1), (2)], [조선문화사]의 과학항목,[조선 중세 과학기술사] 등 많은 책을 집필하였다. 이용태의 업적이 과학사적 성격이 강하다면 기술사에서 중요한 연구를 한 사람은 김승원이다. 김승원은 이용태가 집필한 [우리선조의 자랑]에서 “각종기계”란 장을 집필하고 [조선문화사]에서도 기술적인 항목을 담당했다. 또 [조선기술 발전사 자료집]의 출판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기술사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김승원은 한편으로 그는 평양공업대학(현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열공학 전문가로도 활동하였다. 이렇게 과학계, 기술계를 비롯해 과학사 기술사 연구에 이르기까지 북한 과학기술계의 기초를 쌓은 사람들은 대부분 해방직후 남한에서 근무하다 국대안 파동으로 월북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해방직후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빠른 기간 내에 과학기술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